부산의 독립서점, 어떤 일은 망할 줄 알면서 시작한다
어떤 일은 망할 줄 알면서 시작한다
망할 줄 알면서 시작한 일
서점을 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지속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독립서점을 열고 싶다는 손님들이 꽤 있습니다. 작은 책방을 소소하게 운영하는 것이 로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책방을 여는 일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곧 포기합니다. 책방의 수익 구조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됩니다. 책방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업입니다. 고정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독립서점에서 책을 사입할 떄의 가격(매입가)은 보통 정가의 65-85%입니다. 즉 서점이 출판사나 유통사로부터 책을 구매하는 가격이 이 정도라는 의미입니다. 10,000원의 책을 팔면 최대한으로 수익을 본다고 가정했을 때, 3,500원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20,000원 책이면 7,000원이 남습니다. 하지만 이 가격에 책을 팔기란 쉽지 않습니다. 대형 서점에서는 15%에 달하는 할인과 적립을 제공하니까요.
특유의 색깔로 독자에게 다가가는 서점들은 정가 판매를 고수하기도 하지만, 대형 서점에서 유통되는 대중 서적을 다루는 서점들은 할인이 없이는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15%할인을 동일하게 적용하면 실제 수익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일반 음식업의 원가율이 30% 수준인 반면, 작은 책방의 도서 매입가는 판매가의 80% 수준으로, 고정비를 감안하면 수익이 거의 없거나 미미한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고정비 중 가장 부담이 큰 항목인 임대료를 살펴볼까요. 일반적으로 매출 대비 임대료는 15-20% 이하가 안전합니다. 예를 들어, 월세 100 만 원이라면 월 매출 500-600 만 원 이상이 필요합니다. 이는 하루 평균 책 22-33권을 팔아야 가능하다는 계산입니다. 동네 책방에서는 어려운 수치입니다.
그런데 현실의 동네 서점에서는 하루에 책 한 권 팔기도 어렵습니다. ‘월세 100 만원’도 쉽지 않은 숫자일 수 있습니다. 지방 소도시와 달리,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 상업지구, 또는 대학가 인근에서는 월세 100만 원짜리 공간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고정비를 충당하고 나면 손실을 보는 구조입니다.
책방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책만 팔아서는 책방을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무언가 다른 일을 꾸미고 실행해야만 책방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은퇴 후나 노년에 책방을 하고 싶다는 손님이 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책방의 이미지는 조용하고 차분한 곳이죠. 큰 돈은 못 벌어도 조용히 자신의 삶을 가꾸면서 소소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크게 욕심내지 않고,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온 이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잘 알기에 더욱 소박한 삶을 꿈꾸지만, 평범하게 사는 것이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듯 큰 욕심없이 책방을 운영하기도 힘든 세상입니다.
고정비 충당이 어려우니 사람을 뽑기도 힘듭니다. 웬만한 일은 사장 혼자 처리해야 합니다. 운영, 큐레이션, 세무신고, 온라인 홍보, 마케팅, 이러한 기본 업무를 처리하는 데만 해도 상당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책만 팔아서는 운영이 힘들기 때문에, 강의, 문화 행사, 방송 활동, 출판, 강연 등과 같은 추가적인 업무를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사장 혼자 서점을 운영하면서 이런 부가 활동을 하는 만능 일꾼이 되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은퇴 후 책과 더불어 조용한 삶을 누린다는 것은 재산이 충분하다면 그나마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이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 있을까요? 단순히 책을 파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시작한 이유
책방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 아닙니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망할 줄 알면서도 책방을 시작하게 만드는 걸까요? 이는 단순한 사업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돈되는 일을 해야 하나,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나”, 이 주제는 오랜 논쟁입니다. 예전에는 ‘돈이 되는 일을 하라’가 대세였던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좋아하는 일을 돈이 되게 하라는 의견’도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정답이 없습니다. 현실에서 만나는 상황은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으며, 결국 각자가 선택할 몫입니다.
머릿속에서 장기간 떠나지 않는 주제가 있나요. 그것은 정도에 따라 좋아하는 일, 나아가 사명처럼 느끼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 인생에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고 귀한 일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형태로든 한 번 쯤 시도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패를 감수하더라도 말입니다.
좋아하는 일, 사명처럼 느끼는 일은 단순히 ‘하는 일(doing)’을 넘어 ‘나의 존재(being)’ 와 깊이 연결됩니다. 그 일을 하는 것은 나의 가장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는 행위이며, 세상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가장 나답게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외부의 평가 때문에 그 일을 멈추는 것은, 마치 세상의 시선이 두려워 숨을 쉬지 않는 것과 같은 자기 부정이 됩니다.
새는 박수 갈채를 기대하며 노래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본질이기 때문에 노래합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성공을 위해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느끼고 삶의 의미를 채워나갑니다.
2023년 여름 우리 책방은 시작했습니다. 당시 동네 서점, 독립 서점의 분위기는 최악이었습니다. 부산에도 작은 규모의 서점들이 몇몇 있었는데, 2년, 4년을 하다 사라져갔습니다. 사라진 책방의 운영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정부가 바뀌면서 문화 관련 지원책도 사라졌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면 안 하는 것이 현명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망할 확률이 아주 높은 책방을 열었습니다.
‘2년 하고 망하면 접지 뭐.’ 망할 각오를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용기가 났습니다. 언제나 손익부터 따지던 내 습관을 잠시 내려놓았습니다. 책방에 관해서는 ‘계산’을 후순위에 두기로 했습니다.계산을 무시할 순 없지만, 책방을 여는 일은 내 안에 오래 자리 잡고 있던 어떤 결심을, 세상에 꺼내는 일이었습니다.
성공이나 실패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러나 노력과 과정에 대한 통제권은 오롯이 나에게 있습니다. 화가는 물감이 캔버스에 스며드는 순간에,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는 가설이 증명되는 지적 희열에서, 사회운동가는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연대의 순간에서 가장 큰 보상을 얻습니다. 외부의 인정이나 금전적 보상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성공’이라는 결과물이 아니라 ‘일을 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정상에 오르는 것(성공)만이 유일한 목표인 사람은 날씨가 나쁘거나 길이 험하면 포기합니다. 하지만 암벽을 오르는 행위 자체, 자신의 한계와 싸우는 과정 자체를 사랑하는 등산가는 정상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그 등반을 ‘실패’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과정의 모든 순간이 이미 보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 길 위에 서 있습니다. 내 안의 목소리를 따라 한 걸음씩 더 나아갑니다.
박멀미
종이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종이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동네책방도 전자책을 읽는 시대, 종이책 vs 전자책
동네 책방 운영자도 전자책을 읽습니다. 시대에 역행하는 듯한 책방 직원이 전자책을 본다니, 이제 장사 안 할 거냐는 생각과 함께 전자책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구나 싶기도 합니다. 실제로 모바일 기기의 눈부신 발전과 구독형 서비스의 등장으로 전자책 독서는 일반적인 풍경이 되었습니다.
전자책 등장 초기,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의 종말을 점쳤습니다. 그러나 종이책은 여전히 건재하며, 오히려 종이책을 선호하는 독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종이책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은 것은 아니고 단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인데, 이는 ‘독서’ 소비 자체의 변화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종이책과 전자책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가에 대한 논의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아마존 킨들이 2007년에 출시되었으니 전자책은 약 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간의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독서 효과성 면에서는 대체로 종이책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종이책과 전자책의 근본적 차이점인 물적 형태의 유무에서 비롯됩니다.
전자책은 콘텐츠 자체의 형태가 없다는 장점으로 휴대성이 좋고, 메모나 자료 정리 측면에서 유리합니다. 이런 이유로 종이책을 지속적으로 대체해왔습니다. 하지만 전자책 소비 경험이 쌓이면서 오히려 기존 종이책이 더 나은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종이책 독서는 기억에 효과적이다
종이책 독서는 전자책 독서보다 내용을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해줍니다. 과학적 입증을 떠나서도 많은 독서인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부분입니다. 전자책뿐만 아니라 유튜브를 포함한 다른 미디어들보다 내용에 집중하게 되고, 그만큼 더 잘 기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종이책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종이책을 읽고 나서 책에서 인상 깊었던 어떤 주제를 현실에서 접할 때, “아, 그 내용은 책의 어느 페이지 아래쪽에 있었지”라고 기억되는 때가 있습니다. 혹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다시 그 부분을 상기하고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면서 기억이 더 강화됩니다.
전자책을 읽을 때는 스크롤 다운을 하거나 화면을 좌에서 우로 이동하는 형태를 띱니다. 물론 목차를 불러와 소주제에 따라 건너갈 수 있지만, 이를 고려해도 종이책에 비해 다분히 선형적인 느낌입니다. A부터 Z까지 연속적으로 클리어해야 하며, 기계적으로 지식을 주입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독서 과정에서 강조, 책갈피, 메모 등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지만, 독서 시간 동안 주로 시각만을 사용합니다.
유튜브와 같은 영상 매체는 지식의 휘발성이 더 심합니다. 영상 미디어는 당장 유용한 지식이나 재미를 즉각적으로 얻을 목적으로 소비됩니다. 그 유용성과 함께 콘텐츠의 휘발성 또한 문제로 제기되어왔는데, 쇼츠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는 이러한 경향이 극에 달한 것 같습니다. 영상 매체는 수용자가 수동적으로 소비하기 쉬워서 지식이 금방 사라지는 것입니다. 만약 유튜브라도 메모를 한다든지, 다른 자료를 찾아서 내용을 다시 정리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면 더 잘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책의 내용을 잘 기억하려면, 책을 능동적으로 읽거나 아니면 시각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각을 입체적으로 사용하는 종이책이 훨씬 더 유리합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종이책을 읽을 때는 뇌의 거의 모든 부위가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특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복잡한 사고를 처리하는 배외측 전전두엽이 반응하고,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과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가 동시에 작동합니다. 반면 디지털 화면을 볼 때는 주로 시각 자극에만 의존하여 뇌의 활성화 범위가 제한적이었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주의력이 저하되는 현상까지 확인되었습니다.
종이책 독서는 감성을 개발한다
독서자들은 종이책을 읽으면서 고요한 환경을 구축합니다. 이는 디지털 미디어가 여러 가지 다양한 기능을 통해 분주함을 야기하는 것과 대비됩니다. 또한 종이를 넘기는 행위와 종이 냄새, 물리적인 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단순히 눈으로만 하는 활동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종이책의 물성으로 인해 독서 과정에서 특별한 경험을 얻게 됩니다. 미디어 과부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고요한 가운데서 몰입하는 종이책 독서 경험은 삶의 균형감을 되찾게 해줍니다.
종이책 독서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종이책은 디자인, 판형, 재질, 제본 방식, 후가공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형태에서 심미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서점에 갈 때면 책을 둘러보기만 해야지 하다가도, 책의 외관에 이끌려 몇 권을 꼭 사오곤 하는 경험이 있습니다. 특히 외국에서 발행되는 서적들과 비교해볼 때 국내 출판 디자인과 제작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종이책의 아름다운 물성은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나아가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마치 예술작품을 감상하듯 미적 욕구를 추구하는 행위로 이어집니다. 이를 방증하듯 종이책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지만, 고급 판형이나 실험적인 출판물의 형태도 나오고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 200주년 기념판이나 박경리 작가의 토지 반고흐 에디션, 혹은 지만지에서 나왔던 금박 장정의 도스토옙스키 한정판 같은 책들은 독서인들의 구매욕을 부추깁니다.
동네 책방의 읽기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전자책과 종이책을 동시에 이용합니다. 전자책은 책의 대강을 빠르게 살펴보거나 인용구 작업을 할 때 사용합니다. 책의 선별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혹은 가볍게 읽을 책은 전자책이 훨씬 더 편리합니다.
책을 어느 정도 살피다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있습니다. 이런 책들은 종이책으로 정독을 합니다. 책에 밑줄을 긋고 연필로 메모와 질문을 던지면서 독서를 합니다. 이렇게 읽은 책들은 기억력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연관되는 발상을 이어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전자책의 장점이 분명히 있고 그것을 활용하지만 결국 독서는 종이책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종이책 독서는 단순히 눈으로 글자를 인식하는 것을 넘어, 몸 전체가 참여하는 읽기입니다. 책의 무게를 느끼고, 페이지의 질감을 만지고, 종이 냄새를 맡는 모든 감각적 경험은 뇌의 다중 네트워크를 활성화시켜 더 풍부하고 깊이 있는 학습을 가능하게 합니다. 종이책 독서는 이러한 실용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느끼고 정서적 안정감까지 누릴 수 있게 해줍니다.
동네 책방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결국 독서란 단순한 정보 습득을 넘어서는 경험이라는 점입니다. 전자책이 아무리 편리하고 효율적이어도, 종이책이 주는 깊이 있는 사색과 정서적 풍요로움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은 우리에게 속도를 늦추고 깊이 있게 사유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선사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종이책으로 독서를 이어갑니다.
박멀미
동네마다 책방과 독립서점이 있어야 하는 이유
동네마다 책방이 있어야 하는 이유
자기다움이 사라진 시대
책방에서 독서모임을 하다보면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참여가능할까요? 무식이 탄로날까봐 두려워요” 자주 듣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차저차해서 참여를 하더라도 사전에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의 서평이나 관점을 사전에 보고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그 분과 나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은 별 다를 게 없습니다. 조금 더 편안하게 참여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상호 모방”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SNS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고, 모든 사람이 비슷한 정보를 공유하며 획일화된 사고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는 “지적 게으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왜 다른 사람을 의식할까요? 이런 현상은 우리의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과 깊은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머리가 좋고, 학업성적이 우수하지만 입시에서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한 공부를 합니다. 그래서 세계를 이끄는 기술을 ‘창조’하기보다는 기존 기술을 충실히 학습해서 따라가거나, 활용하는 수준에서 장점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구 제국주의의 문화가 아직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유는 창의력 때문이 아닐까요. 서구에는 디자인 하우스가 있었고, 아이폰을 만들었으며, 지성을 지배하는 여러가지 사상도 나왔습니다. 문화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은데, 우리 것을 지키려면 독창성이 있어야 합니다.
OECD 국가별 성인 1인당 월간 독서량을 보면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인 반면, 우리나라는 0.8권으로 세계 최하위권(166위)입니다. 이렇게 책을 안보는 나라인데 선진국이니 아니니 하는 소리도 나오고,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국가입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책을 안읽어도 이 정도인데, 읽는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AI의 시대야말로 창의력의 시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창의력은 거창한 발명이나 예술적 천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자기처럼 사는 삶”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자기다움을 실현하는 핵심 공간으로 동네책방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창의력을 이야기하면서 왜 동네책방이 나오냐 싶을수도 있겠습니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기 때문에 자라는 과정, 동네를 거닐면서 사유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적 산물들을 접하는 것이 창의성 계발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동네책방의 이러한 잠재적 가능성이 풍부한 장소입니다. 동네책방은 단순한 상업공간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고유한 취향과 사고를 형성할 수 있는 문화적 거점입니다. 그렇기에 동네마다 책방이 하나씩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단순한 문화정책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사회적인 가치와 직결됩니다.
자기다움의 실현 공간
동네책방은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키워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대형서점에서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추천 알고리즘에 의존하게 되지만, 동네책방에서는 책방 주인의 취향과 철학이 담긴 선택의 공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어떤 책방은 독립출판물 중심으로, 또 어떤 책방은 여행과 일상을 주제로 한 선별된 도서로 각각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개성을 가진 서점이 많을 수록 우리는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책을 선택하고 사고할 수 있습니다.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과 확연히 다른 점입니다.
동네책방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 아닌 문화적 욕망을 충족하는 ‘정원’과 같은 공간입니다. 마치 집안의 정원이 실용적 목적보다는 아름다움과 여유를 위한 공간이듯, 동네책방은 우리 삶에 여백과 깊이를 더해줍니다. 건축에서 목적 없는 공간을 두거나 비워두는 것은 사용자가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사용하지 않는 여백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희 책방을 여백으로 두시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목적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이런 여유로운 공간이 있어야 ‘정해진 마음’에서 벗어나 느슨해진 상태에서 ‘자기다운 삶’을 만날 수 있습니다.
획일화된 대형서점과 달리 동네책방은 개성 있는 공간입니다. 도서관과의 차별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도서관은 주로 검증된 전문가를 섭외하는 강의나 세미나 위주로 운영되지만, 독립서점은 시민 개개인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다른 사람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시민들이 단순한 참여자가 아닌 문화 활동의 기획자이자 진행자로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동네책방들이 글쓰기에 관심 있는 시민들에게 출판 과정 안내, 인터넷 플랫폼 활용법 등 다양한 도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상상력과 창의력의 배양지
동네책방의 가장 큰 매력은 예상치 못한 발견에 있습니다. 책방 주인의 독특한 책 선정을 통해 우리는 평소라면 접하지 못했을 책들과 만나게 됩니다. 예전에 작은 책방에서 프로파간다 출판사의 책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메이저 출판사의 느낌이 나는 곳이지만, 당시 책인지 포스터인지 모를 파격적인 표지 디자인이 무척 신선했습니다. 이처럼 상업성보다 작품성을 추구하는 책들은 인생에서 우연히 만나는 독특한 사람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우연한 만남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저를 새로운 세계로 이끕니다. 알고리즘(온라인 서점의 추천시스템)에 의존하지 않는 이런 우연함이 창의력의 원천입니다. 도서관과 대형서점이 이미 검증된 콘텐츠 위주로 운영된다면, 작은 서점은 주인 혹은 지역민의 취향을 따르기 때문에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류에서 벗어난 목소리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희 책방에서도 이러한 창의적 큐레이션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 책방의 독특한 큐레이션은 무엇일까요? “문학과 인문학 위주로 시작하고, 독립서적은 소량만 두고 반응을 보자.” 그러다보니 거의 다 메이저 출판사의 책이 자리잡았고, 저희만의 아이덴티티는 없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책방을 운영하다보니 ‘책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아이덴티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주류’라고 하는 책을 들여왔는데, 저희 동네 사람들에게는 ‘비주류’로 통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책에 대한 ‘새로운 발견 가능성’은 독서인들에게는 또다른 매력입니다. 일본의 한 서점 경영 전문가는 ‘독자가 아는 책과 모르는 책이 적절하게 조화로워야 비로소 그 서가는 관심을 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독자가 모두 알거나, 모두 모르는 책이면 흥미를 잃는다는 것입니다. 동네마다 독자들의 성향이 다릅니다. 따라서 지역 독자들과 상호작용하는 각 동네 서점도 다루는 책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동네책방에서 운영되는 북클럽은 단순한 책 읽기를 넘어 자기 성찰과 깊이 있는 토론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중심으로 토론과 작문을 통해 느리고 깊게 읽는 방법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빠른 소비 문화에 대한 대안이며, 실제로 저희 책방 북클럽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모여 책을 중심으로 각자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제 언어가 풍성할수록 제가 감지하는 세계는 다채로워집니다. 다양성은 진보와 가까운 말입니다. 같은 주제라도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는 책들을 접하며, 획일화된 사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관점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서점의 알고리즘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 가능한 추천을 하는 AI 시대에 이런 우연한 만남의 공간이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문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역할
동네책방은 책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지식의 집합체이자 소통의 장입니다. 여기서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만나며 서로의 경험과 지혜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학생부터 은퇴하신 어르신까지 다양한 분들이 모입니다. 이분들은 책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세대와 계층을 넘나드는 소통을 합니다. 할머니께서 손자에게 책을 읽어주시고, 대학생이 중학생에게 진로 상담을 해주시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습니다.
도서관이 공공성과 체계성을 중시한다면, 작은 책방은 시민이 직접 주도할 수 있는 자유로움과 창의성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지역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개인출판물을 전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민들께서 직접 시 낭송회를 기획하시거나, 지역 역사 사진전을 여시거나,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주체적 참여를 통해 지역 고유의 문화 활동이 생겨나고, 진정한 의미의 문화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책방에서 열리는 작은 모임들은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동네의 환경 문제를 논의하는 시민 모임, 지역 역사를 발굴하는 연구 모임, 아이들을 위한 독서 동아리 등이 모두 이런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이런 다양한 활동들이 축적되면서 책방은 자연스럽게 지역 공동체의 문화활동 중심지가 됩니다. 스마트폰과 온라인이 일상화된 시대에, 이런 아날로그적 만남과 우연한 발견의 공간은 더욱 소중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방의 가치는 이런 적극적인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 외에도 동네 책방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 상징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책방은 그 존재만으로도 동네 주민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퇴근 길에 따뜻한 조명이 비치는 책방 앞에서, 사람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진열된 책들을 바라봅니다. 그 순간 일상에 지친 마음에 작은 위안과 영감이 스며듭니다. 독서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거나 지식과 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책방은 동네 사람들에게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 잡습니다.
문화공공재로서의 동네책방
동네책방은 상업공간을 넘어선 문화공공재입니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배양하는 우연한 만남의 공간이자, 지역 공동체 문화 창출의 거점입니다. 온라인 서점의 알고리즘이 예측 가능한 추천을 하는 AI 시대에, 동네책방은 예측 불가능한 발견과 진정한 창의력의 원천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간한 ‘2024 지역서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서점이 없는 지자체가 6개, 1개만 남은 위험 지역이 21개에 달합니다. 10곳 중 7곳이 연매출 2억원 미만으로 경영난이 심각합니다.
도서 판매만으로는 서점 경영이 어려운 현실에서 식음료 및 굿즈 판매, 공간 임대, 유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들이 책방을 단순한 서점에서 복합 문화공간으로 진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들이 지속되려면 시민들의 적극적 이용과 참여, 그리고 정책적 지원도 필요합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역 커뮤니티와 밀착한 각각의 책방은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지역의 특색을 반영해 다양한 문화적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께서 손자에게 책을 읽어주시고, 대학생이 중학생에게 진로 상담을 해주며, 시민들께서 직접 시 낭송회를 기획하고 지역 역사 사진전을 여시는 공간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획일화된 문화 소비에서 벗어나 진정한 다양성과 창의성이 꽃필 수 있습니다.
동네마다 책방이 하나씩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시대에, 아날로그적 만남과 우연한 발견의 공간이 더욱 소중해지고 있습니다. 책방이 있는 동네와 없는 동네의 차이는 단순히 책을 살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풍요로움과 공동체 의식의 차이입니다. 동네마다 책방이 하나씩 있는 사회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의 모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