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은 망할 줄 알면서 시작한다
망할 줄 알면서 시작한 일
서점을 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지속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독립서점을 열고 싶다는 손님들이 꽤 있습니다. 작은 책방을 소소하게 운영하는 것이 로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책방을 여는 일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곧 포기합니다. 책방의 수익 구조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됩니다. 책방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업입니다. 고정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독립서점에서 책을 사입할 떄의 가격(매입가)은 보통 정가의 65-85%입니다. 즉 서점이 출판사나 유통사로부터 책을 구매하는 가격이 이 정도라는 의미입니다. 10,000원의 책을 팔면 최대한으로 수익을 본다고 가정했을 때, 3,500원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20,000원 책이면 7,000원이 남습니다. 하지만 이 가격에 책을 팔기란 쉽지 않습니다. 대형 서점에서는 15%에 달하는 할인과 적립을 제공하니까요.
특유의 색깔로 독자에게 다가가는 서점들은 정가 판매를 고수하기도 하지만, 대형 서점에서 유통되는 대중 서적을 다루는 서점들은 할인이 없이는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15%할인을 동일하게 적용하면 실제 수익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일반 음식업의 원가율이 30% 수준인 반면, 작은 책방의 도서 매입가는 판매가의 80% 수준으로, 고정비를 감안하면 수익이 거의 없거나 미미한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고정비 중 가장 부담이 큰 항목인 임대료를 살펴볼까요. 일반적으로 매출 대비 임대료는 15-20% 이하가 안전합니다. 예를 들어, 월세 100 만 원이라면 월 매출 500-600 만 원 이상이 필요합니다. 이는 하루 평균 책 22-33권을 팔아야 가능하다는 계산입니다. 동네 책방에서는 어려운 수치입니다.
그런데 현실의 동네 서점에서는 하루에 책 한 권 팔기도 어렵습니다. ‘월세 100 만원’도 쉽지 않은 숫자일 수 있습니다. 지방 소도시와 달리,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 상업지구, 또는 대학가 인근에서는 월세 100만 원짜리 공간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고정비를 충당하고 나면 손실을 보는 구조입니다.
책방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책만 팔아서는 책방을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무언가 다른 일을 꾸미고 실행해야만 책방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은퇴 후나 노년에 책방을 하고 싶다는 손님이 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책방의 이미지는 조용하고 차분한 곳이죠. 큰 돈은 못 벌어도 조용히 자신의 삶을 가꾸면서 소소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크게 욕심내지 않고,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온 이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잘 알기에 더욱 소박한 삶을 꿈꾸지만, 평범하게 사는 것이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듯 큰 욕심없이 책방을 운영하기도 힘든 세상입니다.
고정비 충당이 어려우니 사람을 뽑기도 힘듭니다. 웬만한 일은 사장 혼자 처리해야 합니다. 운영, 큐레이션, 세무신고, 온라인 홍보, 마케팅, 이러한 기본 업무를 처리하는 데만 해도 상당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책만 팔아서는 운영이 힘들기 때문에, 강의, 문화 행사, 방송 활동, 출판, 강연 등과 같은 추가적인 업무를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사장 혼자 서점을 운영하면서 이런 부가 활동을 하는 만능 일꾼이 되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은퇴 후 책과 더불어 조용한 삶을 누린다는 것은 재산이 충분하다면 그나마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이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 있을까요? 단순히 책을 파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시작한 이유
책방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 아닙니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망할 줄 알면서도 책방을 시작하게 만드는 걸까요? 이는 단순한 사업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돈되는 일을 해야 하나,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나”, 이 주제는 오랜 논쟁입니다. 예전에는 ‘돈이 되는 일을 하라’가 대세였던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좋아하는 일을 돈이 되게 하라는 의견’도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정답이 없습니다. 현실에서 만나는 상황은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으며, 결국 각자가 선택할 몫입니다.
머릿속에서 장기간 떠나지 않는 주제가 있나요. 그것은 정도에 따라 좋아하는 일, 나아가 사명처럼 느끼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 인생에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고 귀한 일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형태로든 한 번 쯤 시도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패를 감수하더라도 말입니다.
좋아하는 일, 사명처럼 느끼는 일은 단순히 ‘하는 일(doing)’을 넘어 ‘나의 존재(being)’ 와 깊이 연결됩니다. 그 일을 하는 것은 나의 가장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는 행위이며, 세상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가장 나답게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외부의 평가 때문에 그 일을 멈추는 것은, 마치 세상의 시선이 두려워 숨을 쉬지 않는 것과 같은 자기 부정이 됩니다.
새는 박수 갈채를 기대하며 노래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본질이기 때문에 노래합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성공을 위해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느끼고 삶의 의미를 채워나갑니다.
2023년 여름 우리 책방은 시작했습니다. 당시 동네 서점, 독립 서점의 분위기는 최악이었습니다. 부산에도 작은 규모의 서점들이 몇몇 있었는데, 2년, 4년을 하다 사라져갔습니다. 사라진 책방의 운영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정부가 바뀌면서 문화 관련 지원책도 사라졌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면 안 하는 것이 현명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망할 확률이 아주 높은 책방을 열었습니다.
‘2년 하고 망하면 접지 뭐.’ 망할 각오를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용기가 났습니다. 언제나 손익부터 따지던 내 습관을 잠시 내려놓았습니다. 책방에 관해서는 ‘계산’을 후순위에 두기로 했습니다.계산을 무시할 순 없지만, 책방을 여는 일은 내 안에 오래 자리 잡고 있던 어떤 결심을, 세상에 꺼내는 일이었습니다.
성공이나 실패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러나 노력과 과정에 대한 통제권은 오롯이 나에게 있습니다. 화가는 물감이 캔버스에 스며드는 순간에,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는 가설이 증명되는 지적 희열에서, 사회운동가는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연대의 순간에서 가장 큰 보상을 얻습니다. 외부의 인정이나 금전적 보상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성공’이라는 결과물이 아니라 ‘일을 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정상에 오르는 것(성공)만이 유일한 목표인 사람은 날씨가 나쁘거나 길이 험하면 포기합니다. 하지만 암벽을 오르는 행위 자체, 자신의 한계와 싸우는 과정 자체를 사랑하는 등산가는 정상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그 등반을 ‘실패’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과정의 모든 순간이 이미 보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 길 위에 서 있습니다. 내 안의 목소리를 따라 한 걸음씩 더 나아갑니다.

